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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강익모의 문화평단] 이런 영화 어디서 보나요?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강익모] 그 곳에서만 볼수 있는 영화, 전주국제 영화제 <책 읽는 사람들>

전주국제영화제 익스팬디드시네마 작품 27편중 <책 읽는 사람들(Readers)>이 바로 영화제의 지적인 층위와 영화제만의 가치를 역설한다. 5월 6일 상영된 영화 <책 읽는 사람들>은 아방가르드와 실험영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조명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이는 국내 6개 지역, 장르영화제의 축제적 가치와 지적 문화콘텐츠의 역할을 되새기게 하는 사례가 되었다. 실제 이 영화의 상영중에는 많은 곽객들이 30분 이후 10여분이 지날 때마다 하나씩 둘씩 객석을 빠져 나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고 어떻게 진행되었기에 관객이 빠져나가며 한숨을 쉬는가?

미국감독 제임스 베닝(james Benning)의 2017년작 <책 읽는 사람들>은 108분의 러닝 타임이다. 그 테마와 연출기법은 그야말로 책을 읽는 세 사람의 여성과 한 사람의 중년 남성을 보여준다. 스토리나 영화적 임직임은 없다. 그야말로 소파나 침대, 책상에 앉아 심각하게 책을 읽는 모습을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롱테이크로 보여주기만 한다. 처음 등장한 금발의 여성은 턱을 괴거나 신발을 신은 자세로 음악이 들리는 카페의 의자에 앉아 가끔 고개를 들어 눈동자를 굴리거나 하품을 하며 책을 응시할 뿐 일어나거나 대화를 하지 않는다. 움직임은 거의 없고 음악소리만 가늘게 들린다. 이 장면은 30분동안 지속된다. 이른바 틀림없는 롱테이크다. 두 번째 등장인물인 여성은 침대에서 편한 자세로 책을 27분간 읽는다. 그 다음 초로의 남성은 가끔 한숨을 쉬거나 안경을 고쳐 쓸 뿐이다. 마지막 노파는 수전증과 틱 장애를 앓는 듯 책장을 넘길 때마다 관객의 시선이 오히려 안타깝게 얼굴과 주름진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연기가 아닌 리얼리티의 극단성을 보인다.

이쯤 되면 일반 상업극장의 관객은 항의하거나 환불을 요구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제의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은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대신 소중한 경험과 그 이후 찾아오는 의문들이 해소되며 지적인 도구로서의 영화를 자각하게 된다.

첫 번째 금발의 여성이 읽은 책은 D.H 로센스의 <사랑하는 연인들>(1920년)이다. 두 번재 침대 위에서 안경을 긴 중년 여성에게 읽힌 소설은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Mouchette>, 세번재 남성이 읽은 책은 Roy peter가 편집한 <The Faber Books of Madness>(1991), 네 번재 노파가 힘겹게 읽은 책은 죠수아트리의 작품이다.

이들이 책을 읽는 동안 관객은 영화의 흐름과 기이한 호기심의 결과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들이 준 인상과 책의 두서너 문장이 주는 고민과 선택의 부분을 뒤는게 배회하게 된다. 영화의 기법이 다양하듯 책의 깊이와 다가서는 지루할 정도의 시간적 소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혹시나 부박해진 오늘날의 문학적 텍스트보다 이미지세계에 더욱 천착한 세태를 감독은 그려내고 영화제는 이것은 간파하여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영화제에서만 겪을 수 있는 풍경이다. 그것은 오래 각인되고 오래동안 의문을 생성하고 자가 발전하여 새로운 가치의 답변을 생성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