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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연·전시

[고담비 큐레이터의 오픈갤러리] 동서양의 화가, 꽃을 이야기하다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고담비]

꽃에 대한 관심은 지역과 시대 그리고 세대의 구분 없이 지속하여 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다양한 용도로 꽃을 사용해 왔으며, 꽃이 피는 시기나 색, 특성들을 이용해 꽃에 다양한 의미들을 부여해왔다. 그렇다면 화가들에게 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이번 미술이야기에서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미술의 역사와 함께한 '꽃을 그린 그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서양의 '꽃 그림' 발생과 네덜란드 꽃 정물화

▲ 꽃을 든 여성 폼페이 벽화, AD 50-60

꽃을 소재로 한 서양회화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나, 폼페이의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에서 꽃은 인물이나 풍경 옆에 그려져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곤 했다.

이후 꽃이 독립적인 주제로 그려진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에 이르러 처음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꽃을 비롯한 다양한 사물들이 등장하는 정물화가 유행 했는데, 이는 당시 네덜란드의 사회상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16-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인해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의 화가들은 더이상 그들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제단화들을 그릴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들의 특기를 살린 새로운 주제들을 의도적으로 찾아 나섰고, 그 결과 ‘정물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각광받게 된다. 그리하여 네덜란드에서는 다양한 정물화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소재나 의미에 따라 식탁 정물화,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 꽃 정물화, 그리고 사치스러운 프롱크(Pronk) 정물화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양귀비, 수선화 등 진귀한 꽃들이 그려진 정물화가 크게 성행했다. / ⓒ 참조: 얀 브리겔의 꽃 그림과 그림의 상세 모습

▲ 얀 브리겔, <꽃 정물화>, 1607-8, 패널에 유화, 67x51cm, 프라하 국립박물관

당시 꽃을 기록한 화가로는 꽃 정물화의 대가, 얀 브리겔 (Jan Brueghel, 1568-1625)을 들 수 있다. 얀 브리겔은 자크 드 헤인 (Jacques de Gheyn II, 1565-1629), 룰란트 사베리(Roelant Savery, 1576-1639)와 더불어 어두운 화면을 배경으로 조그만 화병에 화려하고 다양한 종류의 꽃들을 배치하는 전형적인 꽃 정물화의 구조와 기틀을 만든 화가이다. 얀 브리겔은 섬세한 질감 묘사로 비단을 의미하는 Velvet이라는 애칭을 얻어, 비단 브리겔(Velvet Brughel)이라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