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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연·전시

[박정기의 공연과 문화] 서울공대 동문극회 극단 실극의 안톤 체홉 작 전훈 번역 연출의 잉여인간 이바노프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박정기]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서울공대 동문극회 극단 실극의 안톤 체홉 작, 전 훈 번역 연출의 <잉여인간 이바노프>를 관람했다.

서울공대의 연극부는 1967년에 첫공연을 시작했고, 서울공대 동문극회는 1988년 9월에 창단되어 30년이 되었으니 공대 연극 부까지 합하면 50년이 넘어선 셈이다.

초기 공릉동 연극 부 시절에는 필자도 연출로 참가하였으나 당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 1956)의 희곡이 공연 금지된 기간이었기에 '갈릴레오의 생애'를 연습하다가 중단된 적이 있어 감회가 깊다.

안똔 파블로비치 체홉(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Anton Pavlovich Chekhov,1860~1904)은 흑해 위에 있는 아조프 해연안의 항구도시 타간로크(Taganrog)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예비학교를 다닌 후, 타간로크 인문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성적 불량으로 3학년 때 유급하고, 3년 뒤 고대 그리스어 시험에 낙제하여 다시 5학년에 유급해 원래 5년이면 졸업하는 학교를 8년 만에 졸업한다. 그런 후 모스크바 대학의 의학과에 진학한다. 그러나 이 때부터 체호프는 의학공부를 하는 한편 타간로크에서 받는 장학금과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의 잡지에 유머 단편을 써서 그 원고료로 부모와 세 동생의 뒷바라지를 한다.

1887년 연극 이바노프의 첫 공연이 있기까지 체호프은 문학잡지 <귀뚜라미(Strekoza)>, <파편(Oskolski)>, <자명종(Budilnik)>, <페테르부르크 신문> 에단편과 수필을 기고한다. 특히 1883년에는 <Oskolski>에 모스크바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컬럼을 맡는다.

체호프의 글은 호평을 받았으며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이미 신진 소설가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1883년 의과대학을 졸업한다. 그러나 23세 때 걸린 폐결핵이 체호프의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 그 해 11월에 처음 결핵 증세로 요양한다.

톨스토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체호프는 시베리아, 사할린 섬 여행을 계획하고 1890년 모스크바를 출발, 사할린에 도착한다. 사할린 섬에 유배된 수인(囚人)들의 비참한 생활은 체호프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 그는 1899년, 건강상태가 악화되자 얄타를 마주보는 크림 반도로 옮겨간다.

1900년에는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사임하고 1904년에 폐결핵으로 44년의 생애를 마친다.

체호프의 만년은 연극, 특히 모스크바 예술극단과의 유대가 강했고, 1901년에 결혼한 올리가 크니페르는 예술극단의 여배우다. 체호프는 직접 무대에 서기도 했으며, 19세기 말의 러시아 사회 상태를 배경으로 하여 반항적이지만 능력 없는 인물을 극에 등장시킨다.

1887년에 집필된 <이바노프>는 모스크바 및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기교로도 <프라토노프>보다 앞선 작품이었고, 차기작인 <숲의 정(精)>에서 실패를 하기는 했으나, 단편 <곰>(1888)이나 <청혼>(1889) 등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896년의 <갈매기>를 비롯해 <바냐 아저씨>(1899), <세 자매>(1901), <벚꽃동산>(1903) 등을 집필해 새로운 형태의 회화극(會話劇)을 확립한다.


전 훈은 서울生으로, 보성고와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하고, 96년 러시아 모스크바 쉬옙낀 연극대 M.F.A.(연기실기석사)출신 연출가다. 1996년 희곡 <강택구>로 동서희곡문학 신인작가상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극단 애플씨어터 대표 겸 연출이고, 서울예대 연극과 출강중이다.

전훈은 21세기 초 한국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작가로 체홉과 러시아 사실주의 연기법에 영향을 받은 희곡을 발표 공연했다.

초창기 작품인 <결혼전야>,<회상> 등은 러시아 유학시절에 발표 공연한 작품으로 그 시대 평범한 사람들이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귀국해서는 <난타>, <도깨비 스톰>, <나에게 사랑은 없다> 등의 뮤지컬을 의뢰받아 집필하다가 극단 애플 씨어터를 창단하면서 자신의 작업에 몰두했다. 2000년 일반화와 편견이 가득찬 사회에 일침을 가한 <죽음의 토크쇼>를 발표해 시대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뜨리는 통쾌한 희곡이라는 평을 받았다.

2004년, 전 훈 연출가는 안똔 체홉 4대 장막전’을 기획해 1년 동안 <벚꽃동산>, <바냐아저씨>, <갈매기>, <세자매>를 번역하고 연출해 공연기록을 출간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한 명의 연출가가 1년 동안 안똔 체홉의 4대 장막을 모두 연출한 것은 최초였다. 안똔 체홉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 일종의 트리뷰트(헌정) 기획 공연이었다. 이 공연으로 전 훈은 동아연극상 연출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무대 장치는 국공립극단 못지않게 설계되었고, 5막 전체가 변형된 무대로 이루어진다. 창밖으로 복도가 있어 출연자들이 수시로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화장대, 탁자, 의자의 배치도 장면에 따라 이동 무대디자인을 한 양영일(건축 68)의 기량이 발휘된 작품이다. 음악, 의상, 대소도구나 소품에 이르기까지 공을 들인 게 제대로 드러난다.

연극은 첫 장면이 이바노프 집 거실에서 시작된다. 외출을 하려는 이바노프에게 친척형제 보르낀이 등장해 2인의 대화에서 이바노프가 채무변제일이 다가와 고민하는 모습이 보르낀의 낙천적인 모습과 대비되면서, 병색이 완연한 이바노프의 부인 안나가 첼로를 가지고 등장하고, 뒤따라 주치의 올보프가 걱정스런 모습으로 등장해 안나를 침실로 돌아가도록 권한다. 올보프는 이바노프에게 안나를 한시바삐 요양원으로 보내라고 충고를 하지만, 현재 부근 도지사 댁 마님에게 빚을 갚아야 할 기일이 코앞에 닥친 이바노프에게는 주치의의 충고가 당나귀 귀에 코란 읊기나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이바노프.... 어쩌면 체호프 자신일 수도 있지만, 이바노프는 함께 살고 있는 외삼촌인 샤벨스끼 백작까지 부담스럽다. 60이 지난 외삼촌은 어디 놀러갈 장소만 있으면 이바노프에게 데리고 가 달라고 보채는 게 일쑤다. 도지사 부인에게 약속한 날짜에 빚을 갚을 수 없으니 기일을 연기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갈 때, 이바노프는 함께 가자고 떼를 쓰는 삼촌과 할 수 없이 동행을 한다. 이바노프의 부인 안나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남편 모르게 뒤따라 도지사의 집으로 향한다. 부인이 자신의 뒤를 따르는 것을 이바노프가 어찌 알랴?

도지사 집은 캬바레 같은 분위기다. 운집한 사람들도 그렇고, 음주와 함께 카드놀이를 하는가 하면, 아라비아 풍의 의상의 여인이 배와 배꼽을 드러내고 요염한 모습으로 춤을 추고, 역시 아라비아 풍의 남성은 고풍스런 흡연 기로 흡연을 한다. 남녀 연회를 즐기는 장면이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이때 이바노프와 삼촌이 방문하자, 도지사나, 부인의 환대가 쌀쌀맞은 느낌이다. 물론 이바노프의 빚을 늦춰달라는 이야기가 원인이지만 도지사는 그런 이바노프에게 관대함을 나타낸다.

삼촌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손님으로 와 있는 젊은 미망인에게 눈독을 들인다. 실은 조카 보르낀의 사주로, 돈 많은 이혼녀이자 허영심이 많은 마르파에게, 빈털터리이지만 백작칭호의 삼촌을 소개해, 두 사람을 결혼시켜 마르타를 백작부인으로 만들어 그녀의 허영심을 충족시킨 후, 그녀의 돈을 옭아내려는 일종의 경제적 사업을 이룩하려는 심사다.

어쨌건 모두 어울려 떠들고 즐기면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도지사 집 마당으로 몰려 나가자, 도지사의 아름다운 딸 사샤가 이바노프에게 달려온다. 이바노프야 아내 병수발 하랴, 빚 갚으랴,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릴 여유가 없지만, 안톤 체호프처럼 잘생긴 이바노프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이 접근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도지사의 딸 사샤가 이바노프에게 "나는 당신 거예요"하고 대놓고 달려들어 이바노프에게 예쁜 입술을 가져다 대고 냅다 부벼대니, 이바노프는 놀라고 난처한 마음에, 처음에는 거부의사를 나타내지만, 열정적으로 몸과 마음을 밀착시키는 사샤를 밀어내기에는, 부처님이 아닌 바에야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이바노프와 도지사 딸의 입맞춤과 포옹이 절정에 이를 때, 이바노프의 아내가 등장해 이 장면을 보고 충격을 해 바닥에 쓰러진다.

막이 바뀌면 집으로 돌아와 허탈하게 앉아있는 이바노프에게 사샤가 찾아온다. 이바노프는 사샤가 온 것에 놀라 제지하려 하지만 사샤는 이바노프에 대한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고백한다. 이바노프는 억지로 사샤를 돌려보낸다. 이바노프의 아내 안나가 등장해 어찌 사샤가 집에까지 찾아오느냐며 남편을 비난하고 고함을 치다가 쓰러져 절명한다.

장면전환이 되면 일 년 뒤로 설정이 된다, 삼촌과 미망인, 그리고 이바노프와 도지사 딸 사샤의 혼례 당일이다. 주치의 올보프는 죽은 안나 대신에 이바노프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모두 결혼준비로 떠들썩한데, 이바노프가 등장한다. 자신의 불륜행실로 아내가 죽었으니, 양심의 가책으로 이 결혼을 하지 못하겠다는 의사표명을 한다. 도지사 내외 뿐 아니라, 주위사람들이 결혼날짜를 받아놓고, 바로 혼례 날, 어찌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떠들어 댄다. 이바노프의 삼촌도 미망인과 결혼을 하지 않겠다며 밖으로 나간다. 미망인이 삼촌의 뒤를 헐레벌떡 쫓아간다. 도지사는 이바노프를 사람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 빚도 탕감해주고, 지참금까지 주겠다며 사위될 사람을 달랜다. 사샤가 사람도 달려와 이바노프에게 항의를 하고, 주치의가 등장해 죽은 이바노프의 아내를 위해, 이바노프에게 결투신청을 한다. 그러나 이바노프는 결투를 거절한다. 이바노프의 친척형제가 올보프가 대신 주치의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권총을 꺼내자, 이바노프는 이를 제지하고 권총을 빼앗는다. 그리고 거실 밖으로 나가 복도에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총성과 함께 이바노프가 쓰러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이상헌이 이바노프, 윤소연이 안나, 천현진이 사샤, 김인수가 이바노프의 삼촌, 정인범이 사샤의 아빠 레베제프, 박혜성이 사샤의 엄마, 최기창이 주치의 올보프, 정창옥이 이바노프의 친척 영지관리인, 이주미가 괴짜 노파, 김광현이 세무사, 이해다가 마르파,

박상민이 아라비아 무희, 조장희 수행원, 이우종 김기호 이태식 이병호 이 호가 손님으로 출연해 열정과 기량을 발휘해 연기력을 펼친다. 비전문 연극인이 대다수 출연했음에도 전문 연극인 못지않은 호연과 열연은 물론 성격설정으로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 낸다.

제작 노동선 실극회장, 제작부 이태식, 한승우, 김선국, 제작고문 오세기, 이상렬, 이수문, 양영일, 최상규, 김기호, 채경호, 이우종, 장석권, 기획 박병회, 조장희, 김근미, 조연출 한준휘, 무대감독 유경열, 무대디자인 양영일, 홍보 정지혜, 무대장치 대소도구 박영걸, 류택완, 천호준, 김주일, 조명디자인 신 호, 조명오퍼 김승하, 음악 음향 이 호, 음향오퍼 김희진, 의상 정윤아, 소품 한승우, 노수빈, 분장 이상아, 손유정, 김지희, 조성환, 사진촬영 이근표, 리허설 사진 권애진, 현악4중주 정은주(첼로), 손지은(바이올린), 나은수(비올라), 박민주(바이올린), 진행 권태진, 정범모, 김옥규, 이원배, 정용현, 한충수, 김승주, 김옥욱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기량과 열정이 합하여, 서울공대 동문극회 극단 실극의 안톤 체홉 작, 전 훈 번역 연출의 <잉여인간 이바노프>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